프레시안 기사는 때로 지나친 면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 기사는 공감이 가네요

[노무현을 기억하며] '역사의 진보'를 담지해야 '제2의 노무현'

기사입력 2009-06-01 오전 8:37:42


"발인 행사 때문에 장내를 정비해야 되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이제는 300명 씩 한꺼번에 조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영배 전 행사기획비서관의 안내 방송이 반복되던 29일 0시께 기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국화 꽃 한송이를 바쳤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인들 마냥, 영정 앞에 고개 한 번 숙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조문객들을 못 본 채 하고 앞줄에 끼어들었음을 고백한다.

그 순간 비보를 듣고 급히 봉하로 내려온 23일부터 그 순간까지의 기억이, 지난 해 2월 25일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하던 날
동행했던 기억이, 참여정부 후반기 2년 간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서거 당일부터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정토원에 안치된 30일 새벽까지 꼬박 1주일간 봉하 현지 취재를 마치고 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된다.
이미지와 생각과 말의 편린들만 어지럽게 부유하고 있다.

신동엽의 싯귀 같던 봉하생활

▲ 손녀 손을 잡고 사저 앞을 걷던 노 전 대통령ⓒ고 노무현 대통령 장의위원회

지난 해 2월 25일 퇴임하는 노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KTX를 같이 타고 봉하로 내려왔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선 마지막 업무였다. 노 전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의 사람들 표정이 그렇게 밝고 가벼워보였던 적은 없었다.

정권재창출은 실패했고 말기 지지율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대과는 없었다.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자부심만은 충만했다. 한미FTA 문제로 갈라섰던 이정우 전 정책실장도 "고향에 내려가는 첫 대통령이라 흐뭇하다"면서 'FTA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건 그렇지만 다 잘할 수 있냐. 크게 보면 잘 하신 것"이라고 답하며 활짝 웃었다.

봉하마을 환영 인파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혁신과 개방, 분권, 교육과 평화체제를 구축했으나 국민들의 신뢰는 얻지 못한 것 같다"고 자책하면서도 "분명히 노무현식 정치를 한 것 같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 이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가장 좋은 정치인이라고는 말 못하지만 대한민국에 저 같은 정치인이 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너털 웃음을 지었고 박수가 쏟아졌다.

귀향 길 기차에서 출입기자들과 마지막 간담회를 가졌을 때 노 전 대통령은 귀향 계획에 대해 "큰 일을 하고 싶단 생각보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 보고 싶기도 하고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듯해서 그런 사람들과 시간 보내는 일이 가장 바쁜 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해 말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의 생각대로 지냈다. 손녀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며 할아버지 노릇을 했고, 화포천과 오리쌀 재배에 전념하며 귀농의 모범을 보였고, 관광버스 대절해 구경오는 촌로들 앞에 하루 몇 차례씩 나가 "내가 그리 좋아요. 일할 때는 욕하더니 그만두고 나니까 이렇게 좋데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라는 신동엽의 싯귀에 나오는 스칸다나비아 어느 나라 대통령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가 정말 아파했었을 것은 무엇일까?

발빠른 한 신문사가 이미 전문을 게재하다시피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26일 출입기자들과 만찬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28일 공개된,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석방을 허락합니다. 일로부터, 구속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그리고 비판으로부터"라는 자막이 깔린 청와대 출입기자단 제작 동영상이 헌정된 그 비공개 행사였다.

전면 비보도를 전제했지만, 노 전 대통령 특유의 달변은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로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때로는 비감한 표정으로 한 시간 여 동안 소회를 털어놓았다. 돌이켜보면 그날 노 전 대통령 발언에서 비극의 단초가 엿보였다.

"나는 옛날부터 '지사'를 존경해왔다. 어떤 경우도 굴하지 않고 굽히지 않으면서 결국은 마지막에 홀로 목숨을 놓는 지사의 삶이 고귀하다고 봤다. 정치는 그리해서도, 그리 할 수도 없다. 정치는 지사가 못한다. 그러나 지사 없는 정치인만 있어도 무슨 희망으로 사는가. 지사도 더러는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지사적 기개가 있어야 한다. 이상이 없는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가 희망이 있는가. 정치는 현실이지만 지사가 있어야 하고 이상이 있는 정치가 돼야 한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신도 모르게 박연차 회장의 100만 달러가 정상문 전 비서관을 통해 들어온 사실을 확인한 노 전 대통령은 "저를 버리십시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얼마나 해먹었는데, 이명박의 도덕성은 어느 수준인데, 겨우 그걸 가지고 노무현을 괴롭히냐"는 지지자들의 응원이나 "생계형 범죄다"는 전 청와대 인사의 항변이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을 더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부심 떳떳한 대통령 하기로 했다. 내 기준으로는 그것이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다. 내가 도리 없이 스스로 설정한 성공한 대통령이다. 국민들이 오만하다 말할지 모른다."

이 역시 그날 만찬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렇게 오만할 정도로, 결벽적일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노 전 대통령이기에 더 아팠을테다.

"짐만 될 뿐이다"는 말의 의미

봉하에 머무른 1주일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삼십 여개 가까운 기사를 쏟아내는 동안 담지 않은, 담지 못한 말도 많았다.

한 달 쯤 전에 "27일 저녁에 한잔 하자"는 개인적 약속을 잡았었다. 그 때쯤이면 노 전 대통령이 불구속 기소가 되고 사건은 법조의 영역으로 넘어가리라는 요량이었다. 참여정부 청와대를 출입했던 몇몇 기자들과 천호선 전 대변인, 유민영 전 춘추관장 등이 약속의 멤버였다. 추모객이 폭발하던 그 날 밤, 그 약속을 화제에 올리며 "이렇게라도 모이긴 모이네"라며 쓴웃음을 나눴다.

이화영 전 의원이 "이제는 겁나는 것 없다. MB정부가 가한, 쉬쉬했던 고통을 다 밝히겠다"고 말했다던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지인들의 계좌까지 털린 인사가 한 둘이 아니다. 통화내역 조사, 출국 금지 정도는 화제 거리도 아니다. 행정관급 인사들의 취직 자리도 막힐 정도였다.

"짐만 될 뿐이다. 남은 여생도 마찬가지다"는 유언이 나온 까닭이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강금원 회장의 1차 보석 신청 거부는 직격탄이었다.

이런 마음의 고통은 육신도 갉아먹었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몸이 아파 책도 읽을 수 없다"고 토로했듯 생전에 그를 진료했던 부산대 병원의 한 의료진은 "마지막에 정말 건강이 안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고통이 자살 결심에 한 몫하지 않았냐 싶을 정도"라고 전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다하고 무리한 수사도 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 이야기 아니던가?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겁이 많아서"라고 풀이했다. 노 전 대통령이 겁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겁이 많다는 이야기다.

복기해보면 촛불이 사그라들고 나서 봉하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전직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까짓 거 뭐"라고 넘기기에는 간이 작았다.

노무현의 죄

역모를 도모해야만 역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한 백성들의 정신적 구심점만 되도 역적이다. 삼족을 멸할 죄다. 노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영월에 유배됐던, 힘이라곤 없었던 단종도 그래서 죽임을 당했던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명박산성' 뒤에서 아침이슬을 들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자전거로 휘젓고 다녔다. 인터넷에선 '쥐박이'와 '노간지'를 편집해놓은 UCC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죽을 죄다.

둘째로 "내 말 안들었던 검찰은 남 말도 안 듣겠지", "권위주의와 정치보복의 종결은 비가역적이겠지",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라는 '노무현의 착각'도 죽을 죄다.

셋째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자 "제왕적 대통령 문화가 이 비극의 원인이다. 그것이야말로 고쳐야 한다"는 해묵은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개헌론까지 나올 조짐이다. 그렇다.제왕적 대통령이 이 비극의 원인이다. 하지만 검찰을 틀어쥐는 대신에 놓아줘버렸고, 언론을 통제하는 대신에 논쟁했던 노무현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것이 죽을 죄였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 청와대에 있다.

노무현과 예수


▲ 이 열기의 근원은 무엇인가ⓒ프레시안

대변인과 정무비서관을 지내며 대연정, 개헌 등 노 전 대통령의 승부수에 함께했던 정태호 전 비서관과 '노무현과 예수의 유사성'을 화두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새벽녘 끊일 줄 모르는 추모행렬을 보면서 정 전 비서관은 "이 열기의 이유가 뭘까"라고 물었고 기자는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나도 그에게 돌을 던졌다는 미안함이 가장 클 것"이라고 답했다.

레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 사회에 갈릴리에서부터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킨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와 "우리의 왕이 오신다"고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그가 그들이 원하는 왕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들은 빌라도에게 "도둑을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강요했다.

원래 노무현을 잡아먹지 못해 이를 갈았던 세력들은 제쳐놓자. 지금 가슴을 치고 우는 국민들의 마음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서야, 다시 눈물을 흘리며 "가롯 유다를 찾아라"고 나 아닌 다른 죄인을 색출하던 군중들과 유사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예정된 역사다. 그 역사로 인해 민중들이 각성했다. 노무현의 죽음도 예비 된 역사일 수 있을까? 민병두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마지막 전쟁에 혼자 나가서 영원한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정 전 비서관은 "(우리에겐)사람도 없고 세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예수 사후엔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있었고 그들이 예수의 뜻을 전파했다"고 답해줬다. 그런데 베드로는 초대교황으로, 바울은 '기독교'를 사실상 정립한 사람으로 성경과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자신이 뜻을 이룬 인물은 아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순교했다.

봉하에 머무르는 친분이 있는 추모객 몇 명으로부터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 한 방송작가는 간절한 눈빛으로 "유시민이 가능성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글쎄"라고 답했다.

역사의 진보를 담지하는자 만이…

기자들과 청와대 마지막 만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권재창출 실패와 열린우리당의 해체에 대해 "1차적으로 내 책임이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보궐선거 (연이어) 깨지면서 이렇게 됐다"고 자책하면서 앞날을 비관했다.

"(총선에서 연달아) 떨어지고 해도 저는 청문회에서 얻은 이름도 있고, 지지율이 올라갈 밑천은 있었다. 이제 통합정치인은 나올 수 없게 됐다.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치인이 나올 수 없다. 정치는 실패가능성 높은 과정 중에 행운을 잡는 과정이다. 이루 말못할 좌절감 가지고 떠난다."

"대통령이 되고 나니 그 사람들, 내게 열광적 박수를 보내던 노동자들, 자다가도 일어나 몸으로 부대낌을 감수하던 노동자들과 멀리 서 있는 자신을 봤다. 노동자를 구속하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보기에 변절 같겠죠. 황당했겠죠. 그 노동자들 스스로 멀어지고 떨어지는 것을 봤다."

이런 자책도 있었지만 그는 "패자가 예속되지 않는 비천한 지배 없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고 말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공개한 유고에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는가?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 본시 그들의 좌표는 어디에 있었을까? 과거의 말과 이력을 살펴보자. 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라는 구절이 있다.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열세입니다. 그냥 열세가 아니라 형편없는 열세입니다. 이런 열세를 딛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역사의 진운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막강한 돈의 지배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짜내고 이를 지혜롭게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내용도 있다.

유시민이 됐든 누가 됐든, 아니 꼭 '노무현의 사람'일 필요도 없다. 그를 권좌로 밀어 올렸던, 하지만 막상 그 권좌에서 다하지 못했던 역사의 진보를 담지하는 사람이 노무현을 넘어서는 노무현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

대통령 노무현은 '한 사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거꾸로 '한 사람만으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한 사람'만을 찾아나설 것인가?

부재로서 존재를 증명한 노무현은, 흡사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노무현의 국민' 구도를 만들어 놓고 갔다. 남은 것은 산자의 몫이다.


▲ 격무 중 이같이 휴식을 취하던 노 전 대통령은 영원한 휴식에 들었다ⓒ고 노무현 대통령 장의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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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니어그램김현정 화사한님

2009 . 5월 마지막날 . 오늘 저녁 kbs 가 방영한 스페셜과 mbc의 2580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그의 삶에 관한 방송을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국민이 왜 이렇게 슬퍼하는가?

방송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소박한 인간미와 국민과 소통하고자 했던 것에 초점을 맞춘다 . 그게 전부일까?

좋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서 슬픈것도 있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좌절된 슬픔이 더 크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런 꿈이 죽음으로 끝났다 . 이것이  슬픈 것이다.

그 과정에는 검찰의 소환이 있었고 언론의 과대 기사가 있었다 .증거도 없는 죄를 물어 마치 큰 죄를 저지는것처럼 한 나라의 전 대통령을 돌림빵했었다 .

사실 확인도 하기 전에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느니 .. 차용증을 주고 빌린 돈을 한국 단위로 말해도 되는 것을 몇백만 달러로 표기하면서  큰 돈을 뒤로 받은 것처럼 망신을 준 언론과 검찰과 그리고 그 뒤의 청와대 최고 권력자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주위사람을 치면 그가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고 계획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그 주변 사람을 잡아 넣었다. 같은 잣대로 수사하면 안 잡혀 갈 정치가와 기업가가 어디 있을까?.

모두가 야박하게 모질게 그를 괴롭히고 있을 때 우리같은 민초들도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의 진심을 몰라주어서 미안하고 ,앞으로 우리 나라가 좋아질 희망이 안보여서 우는 것이다 .그의 죽음이 너무 슬프고 억울해서 대신 울어주는 것이다 .

과연 취재하는 기자가 그걸 모를까? 말 안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은 자신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밀어서 벼랑끝으로 몰고 갔는지 말하지 않는다 .죽고나서 온 국민이 슬퍼하니까 그것을 중계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은 슬쩍 넘어가고 있다 .

정적 제거라는 목적을 이룬 사람들은 스며나오는 미소를 감추고 자신들이 죽인 사람의  영결식장에 앉아있다 .

죄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서 죽이는 사회 , 검찰과 언론과 정부가 모두 하나가 되어 전직 대통령을 죽이는 이 사회에 살아나가는 절망이 크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 뿐 아니라 한겨레도 경향도 그리고 모든 방송들도 죄 없다 못할 것이다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

그는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자 그리도 애썼는데 그 어느 누구도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에 대해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

아무 죄없는 강금원씨를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였다는 것 하나로 죄를 물어 가둔  법은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날 분명히 잘못한 삼성의 이 건희 회장을 무죄로 풀어주었다 .
법의 폭력과 법의 야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진행되고 있다

지금 현재로선 거대 언론과 제 멋대로인 검찰, 한나라당과 정부의 집단적 폭력을 제어할 방법이 없는것 같다.

 
다음은 누가 또 이렇게 집단 폭력의 희생자가 될까? 

보통 사람으로서는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다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나오면 ..'괜찮을까? 잡혀가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되는 세상.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너무 부끄럽고 슬퍼서 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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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니어그램김현정 화사한님

공무원 시험 한국사 강의하시는 신영식 선생님의 글입니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저는 참으로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제 답사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처음 전해 듣고 나서,
어제와 오늘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가운데 낮에 잠깐 분향소에 들러

이제 서야 제 홈피를 통해 제 심정을 간략하게나마 남기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왔던 제 삶 전체의 롤 모델이었고,
제게 도전해서 안 되는 일은 없고, 모든 일은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분이기에 저는 지금 매우 슬픕니다.

수험생 여러분들도 다 아는 것처럼 저는 단 한번도 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뽑은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 분께서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저는 그 분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었고,
수업 시간에 우리 학생들도 3당 통합에 그분이 혼자서 반대한 일이며, 부산 시장 선거와 2000년 부산 총선에서 낙선될 때

빈 공터에서 혼자 연설한 사실 등 저를 통해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간간히 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 분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 정치에서 이후
그분이 받아야할 고통과 상처가 대단히 클 것은 뻔한 일이고, 어쩌면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 분이 가지신 초심도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노동자와 서민들의 희망으로 그대로 남아주기를 바랐습니다. 2003년 선거에서 그분은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모은 돼지 저금통의 정성을 노란 풍선에 담아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더이상 대한민국에서의 선거가 돈과 권력이 아닌 국민의 뜻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정치는 개인적 능력이나 재력을 가진 자의 산물이 아니라 도덕성과
이 나라와 민에 대한 책임을 가진 자가 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동안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가져왔던 이기주의 꼴통 집단들의 반격은
그 분이 2003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얼마 안가 대대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을 때, 언론사와 재벌들이 모두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공약은 관습헌법 상 수도는 '서울'이라는 말도 안되는 헌재의 논리에 묻혀버렸고,
이후 경기의 침체와 언론의 조작에 휘말려 국민들조차 점차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권 말기 '노무현스럽다.', '노무현 때문이다.' 등등 비아냥거리는 신조어가 태어났고,
저는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이 대단히 못마땅했었습니다. 특히 제 수업을 수강했던 학생들은 잘 알겠지만
저는 수업시간에 '여러분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지켜봐주면 안되겠냐?'는 말까지 했었습니다.

결국 정권이 바뀌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기로 결정하고 봉하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노 전 대통령께서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고향 봉하마을로 가시는 모습에 매우 기뻤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이명박 새 당선자에 대한 기대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좋지 못했지만,
저는 훗날의 역사는 반드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재평가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총칼과 이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피로 점철된 이전의 현대사의 암울한 흐름을 바꾸어
대통령도 술자리에서 씹을 수 있는 자유로운 언론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 주었고,
'반공'과 '북한 괴뢰정권 타도' 만을 강조하던 과거 군사 독재 정권 시기의 논리를 벗어나
다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대한민국 사회에 그리려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만 보더라도 훗날의 역사는 반드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재평가할 것이라는 점에 전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기주의 꼴통 집단들은 재임 시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침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개 인간으로 사는 것도 못마땅했나 봅니다.
봉하마을에서 마을 주민들과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것도 보기 싫었나 봅니다.

  여정부 때의 과거사 청산 문제나 근현대사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모든 것을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들의 후예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까지 - 비록 역사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참기 힘든 일이지만 - 그나마 참고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공개되는 이상 정치적 생명이 끝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저항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꿔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정책을 현재의 집권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정한다는 것과 현재 정치적 집단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이들을 위해 정책이 결정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게 뭡니까? 제발 이전에 반복했던 정치적 보복은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 정권에서는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박연차 게이트의 연장선상 - 금품 수수 사건과 관련된 정당한 검찰의 조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요.

10억이라는 돈, 당시 환율로는 9억 5천만 원의 돈...... 권양숙 여사가 돈을 요구했고 받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요. 네... 잘못입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 왔던 도덕성에는 참으로 큰 흠집이 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들(이기주의 꼴통 집단)이 원한 것이 박연차 게이트에 관한 검찰의 철저하고도 진실된 조사뿐이었을까요?

오히려 이런 것 아니었을까요?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인간 노무현'으로도 살 수 없게 하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평생을 도덕성과 책임의 상징적, 희망적 존재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이러한 사건은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삶의 가치가 송두리 채 무너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 분께서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을 따르는 수만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셨을까요?
- 저는 그분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 한 말 "담배 있나?"가 담고 있는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그분의 죽음 앞에서 제가 부끄러운 것은 왜일까요? 그 분께서 저를 알지도 못하고, 제가 그 분을 지켜 드릴 의무가 있던 사람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닌 우리의 죽음, 우리 희망의 죽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우리 모습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은커녕 자신을 바꾸기 위해 전력을 다해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가난과 짧은 가방끈의 굴레를 벗어던졌으며, 보장된 조세 전문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개인의 혁명을 이루었고, 시종일관 학벌, 지역, 성별, 연령, 재력에 관계없는 그냥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는 점에서 사회의 혁명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 사회적 혁명의 책임은 그 분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 분의 죽음 앞에서 너무도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오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한 가운데 제 마음을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그 분은 멀리 가셨지만 우리 수험생 여러분들이 그 분이 지향했던 삶의 가치를

꼭 한번쯤은 가슴에 새겨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바꿔야 합니다. 지역적 차별과 성적 차별이 없어져야 합니다.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없는 사람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2의 제3의 노무현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사람 사회는 우리 모두가 사람 자체를 삶의 가치로 인식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수험생 여러분들이 사람을 가슴으로 사랑하는 공무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9년 5월 25일 새벽에 신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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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니어그램김현정 화사한님